[막 오른 트럼프 시대] "트럼프가 일자리만큼은 지켜낼 것"…러스트벨트에 퍼지는 희망가

입력 2017-01-15 18:40  

(1) 부활 꿈꾸는 러스트벨트 - 한경·KOTRA 공동기획

쇠락한 자동차 도시 플린트
GM공장 8곳3곳 급감…인구 줄고 실업률 급등
주택가 곳곳 빈집 '흉물'로

'샤이 트럼프 민주당원' 급증
"통상전쟁보다 중요한 건 맘놓고 일할 직장 갖는 것"
일자리 놓고는 편 안 갈려



[ 박수진 기자 ]
미국 미시간주 플린트시 도로 곳곳에는 움푹 꺼진 구멍들이 헤아릴 수 없었다. 차가 그 위를 지날 때마다 요동쳤다. 제리 페나 KOTRA 디트로이트 무역관 과장은 “시내에서 속도를 내다가 타이어에 펑크가 나는 일이 흔하다”고 말했다.

플린트시에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여덟 개나 있었다. 디트로이트에 이어 미국 제2의 자동차 도시였다. GM의 고용 인원만 8만명에 달했다. 쇠퇴하기 시작한 건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지금은 자동차 공장이 세 개만 남았다. 시 인구는 14만명에서 9만명으로 36% 줄었다.


주택가 곳곳에는 매매되지 않는 빈집들이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공사라고는 수돗물 납 중독사태 여파로 진행되고 있는 몇 건의 상수도관 교체작업이 고작이었다. 페나 과장은 “저녁에 이곳에 들어올 생각은 않는 게 좋다”고 귀띔했다. 워낙 위험해 경찰들도 꺼린다고 했다.

“일본 수입차 행렬 막겠다”

미국 공화당이 1988년 이후 벌어진 여섯 번의 대선에서 한 번도 승리하지 못한 지역이 미시간주다. 플린트시가 속한 미시간은 지난해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 지역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간발의 차이(1만704표, 0.3%포인트)로 승리했다. 최종 결과는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후에야 나왔다. 승패가 뒤바뀔 수 있다는 의문이 제기돼 재개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미시간을 비롯해 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오하이오·인디애나·아이오와주 등 ‘러스트벨트(쇠락한 중서·북부 공업지역)’에서 승리를 거머쥐어 백악관 주인이 됐다.

그는 2015년 6월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출마선언 직후 플린트시를 방문해 두 가지를 약속했다. 항구에 밀려드는 일본 수입차 행렬을 멈추게 하고, 포드자동차가 25억달러를 들여 멕시코에 엔진공장을 짓는 계획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트럼프는 이런 ‘일자리 지키기’ 공약을 앞세워 러스트벨트 9개 주 중 7개 주에서 승리했다.

“해고는 다신 없을 것”

미시간주를 포함한 러스트벨트가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생산 비중은 1950년 45%에서 2000년 27%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고용 비중도 43%에서 27%로 떨어졌다. 그나마 2009년 12월 13.9%로 치솟았던 미시간주 실업률이 지난해 10월 4.7%로 떨어졌지만 과거의 해고 트라우마는 여전했다.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트럼프캠프에서 자원봉사한 바버라 하렐 씨(61)는 “남편이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해고 소식을 알려왔던 날의 충격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트럼프는 적어도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해 줄 사람”이라고 신뢰를 보냈다.

일자리를 놓고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원 편이 갈라지지 않았다. “TV 화면에 트럼프 얼굴이 나오는 것조차 싫다”는 목소리도 많았으나 트럼프에 기대를 보이는 민주당 지지자도 눈에 띄었다.

자신을 골수 민주당원으로 소개한 시카고 여의사 프랜시스 이베스타 씨(65)는 “어쩌다 미국에서 트럼프 같은 사람이 당선됐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트럼프가 집요해서 아마 일자리 하나는 어떻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지지자도 트럼프에 호응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부업으로 우버택시를 운전하는 캐시 존슨 씨(43)는 “교역국들과의 통상전쟁을 걱정하는데, 그래서 수입제품 가격이 좀 오르면 어떠냐”고 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갖는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 기업들의 해외 공장 이전을 막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하나둘씩 올리자 ‘샤이 트럼프 데모크래트(트럼프 지지 성향의 침묵하는 민주당원)’가 늘어났다.

일리노이·인디애나·펜실베이니아주 등 러스트벨트 지역을 관할하는 손수득 KOTRA 시카고 관장은 “공화당 지지자든, 민주당 지지자든 일자리 만들기와 지키기로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트럼프에게 호응하고 있다”고 전했다.

러스트벨트, 100년 미국 제조업의 심장부…80년대부터 철강·車 쇠퇴로 내리막

러스트벨트(rust belt)는 1870년대부터 100년간 미국 전통 제조업의 심장부로 불리던 곳이다. 러스트는 영어로 녹을 뜻한다. 쇠락해 공장설비에 녹이 슬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동부 뉴욕주와 펜실베이니아주를 포함해 웨스트버지니아, 오하이오, 인디애나, 미시간, 일리노이, 아이오와, 위스콘신 등 중서부와 중북부 주들을 일컫는다.

과거 이들 지역에선 자동차·철강·기계·석탄·방직산업 등의 제조업종이 활황을 보였다. 1950년 기준으로 9개 주 고용 인원은 미국 전체의 43%를 차지했다. 총생산량도 45%에 달했다.

자유무역협정 등을 통해 시장이 크게 개방되고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자동차·철강·광산업을 필두로 산업이 쇠퇴했다. 제조업체들이 해외와 미국 남부·서부 해안으로 이전하면서 인구 유출이 시작됐다. 2000년 기준 러스트벨트의 고용 인구와 생산품의 부가가치 비중은 각각 27%로 떨어졌다.

2000년대 이후 인구 감소율 상위 10개 도시 중 8개가 디트로이트, 플린트, 클리블랜드, 버펄로 등 이 지역에 있는 도시였다. 2013년 자동차산업 중심지인 디트로이트 시정부가 파산한 것은 쇠락의 대표적 사건으로 꼽힌다.

■ 27%

미국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오하이오주 등 ‘러스트벨트’로 불리는 미국 중·북부 공업지역 생산품의 부가가치가 미국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 1950년 45%에서 2000년 27%로 급격히 떨어졌다. 제조업 부가가치 비중은 이 기간 56%에서 32%로 내려앉았다.

디트로이트·인디애나폴리스=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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